KILL YOUR DARLINGS


우리 형이 외계인 일리 없어!

루미

 

 

우리 형이 외계인 일리 없어!

 

w. 루미

 

 현진은 잘생긴 놈은 얼굴값을 한다는 시대를 가로지르는 명언이 예외인 사람이었다. 현진에게는 사랑이 전부였다. 왜 자기를 사랑해주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꼭 그 사랑이 받고 싶었다. 또 그걸 받지만 않고 꼬박꼬박 모아 오늘 받은 사랑 이만큼, 돌려줘야 하는 사랑 이만큼 하고 차곡차곡 쌓는 사람이었다. 여기서 가장 신기한 건, 이렇게 사랑이 다인 황현진이 러브가계부를 꽉꽉 채워 쓰게 만드는 사람이 사랑이라고는 모를 것 같은 이민호라는 사실이었다.

 

 현진은 사랑받는 것에 익숙했지만 이런 사랑이 있는 지도 몰랐다. 그냥 이민호가 갑자기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고, 황현진은 그걸 또 갔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이 형 말은 이상하게 자꾸만 듣게 됐다. 아침 6시에 회를 먹으러 가자고 해도, 은하수에 가자는 말 같지도 않은 말도 괜히 이 형이 하면 그러자 하게 됐다. 민호는 현진의 자기 연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친한 형이자 소확행 메이트였다.

 현진에게는 나름 가장 친한 형이라고 자부하던 민호가 현진이 들어와 앉자마자 갑자기 남자를 좋아한다는 폭탄 발언을 했다. 그러더니 남자 애인도 있단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있어왔단다. 현진에게는 여기서 부터가 이미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다. 민호가 게이였다는 점도 그랬지만, 자신한테 지금까지 숨긴 것이 더 충격이었다. 왜 나한테는 말 안했지? 내가 못 미더운가? 형은 나만큼 나랑 친하다고 생각을 안 하는 건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에 미처 이르기도 전에 이민호는 대뜸 또 헤어졌단다. 그리고 그거 위로해주려는 사람한테 입술 박치기를 했다.

 당황해있는 현진의 멱살을 잡고 냅다 입술을 부빈 뒤에 귀가 빨개져서 왜 안 밀어내냐고 또 황당한 소리를 하기에 뒷목을 잡아채고 다시 입을 맞댄 것도 오기에서 시작한 것이었다. 나 그런 편견있는 사람 아니고, 나도 형 고민 다 들어줄 수 있는데. 하는 조금 방향이 잘못된 오기. 그런데 또 세모입이라고 생각했던 입술을 빨다 보니 자꾸만 가슴이 시끄럽게 쿵쾅거리는 것이었다. 그때 현진은 처음으로 자신에게도 남자 애인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곧 남자친구가 생겼다. 매일같이 자기 입에 휴지를 물리던 그 형이었다.

 

 형 근데 이전에 만나던 사람 있잖아.

 어.

 그 사람이랑은 왜 헤어진 거야?

 뭐.. 그냥 안맞아서.

 형.. 혹시 그 사람 잊는데 나 이용하는 건 아니지....

 

 물어볼까 말까 오만 번을 고민하게 만들었던 사안인데, 이야기를 들은 민호는 현진의 엉덩이를 짝 소리가 나게 후려치기나 했다. 형 나 진짜 진지해. 평소 같았으면 눈을 뒤집어 까며 환멸난다는 표정을 지어야했는데 엉덩이를 신경도 안 쓰고 묻는 현진에 민호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형 진짜 나 이용하는 거야..? 용기를 내 한 번 더 묻고 나니 민호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애초에 걔 만난 게 너 때문인데?

 어?

 너 안 좋아하려고 만난 거라고.

 

 형은 무슨 그런 말을.. 이렇게 무드 없이 해.. 하면서도 현진이 민호를 끌어안고 어깨에 얼굴을 부볐다. 형. 왜 임마. 미안.. 현진의 말에 민호가 아까 제 손바닥이 닿았던 엉덩이를 콱 움켜쥐었다.

 

 미안하면 엉덩이.

 

 아니.. 그래도 민호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평생 풀지 못할 문제가 아닐까. 현진은 생각했다.

 

 

 

♥♡♥

 

 

 

 난 아직도 형이 나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모르겠어.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한테 휴지를 왜 물리냐? 아니 그게 어떻게 좋아하는 거야? 무릎에 누워 당당하게 말하는 민호에 현진이 황당해하면 민호는 또 현진의 허리를 끌어안고 눈을 감기만 했다. 아니 형. 그게 어떻게 좋아하는 거냐니깐. 물으면 작게 말했다. 너한테만 그러는 거다~ 너한테만. 아니 그러니까 나한테든 누구한테든 휴지를 왜 물리냐고. 그게 어떻게 애정 표현이냐고.

 현진은 투덜거렸지만 민호한테 까불다가도 저 형이 또 휴지 물리려나 이상하게 기대했던 제 모습이 떠올라 입을 다물었다. 너한테만 그러는 거라는 민호의 말에 그때처럼 이상하게 가슴이 간지러운 것 같았다. 근데 진짜 이 형한테는 괜히 그런 게 있었다. 오라 가라해도 그래 내가 가야지가 되었고, 오밤중에 야식을 먹자거나 산책하자거나 불러내는 게 고마웠다. 괜히 까불고 싶고, 괜히 형 눈에 한 번 더 띄고 싶고, 괜히 휴지 한 번 더 물고 싶고. 아 진짜. 이상한 형이랑 사귀게 돼서 내 머리도 이상해진 게 분명해. 현진이 고개를 저었다.

 

 형은 진짜 이상해. 무슨 외계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엉. 나 외계인인데.

 뭔 소리야 또;;

 안 믿네?

 아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가 말 안했냐? 나 MH-1025 별에서 왔다고.

 눈 똑바로 뜨고 거짓말하는 거 봐. 이 눈. 눈.

 안 믿으면서 구라는.

 

 진짜 초등학생도 안 믿을 황당한 소리를 늘어놓기에 잔뜩 땀을 흘리며 말했더니 외계인이라고 하면 믿는다면서 안 믿네? 하고 눈을 흘기는 민호의 얼굴에 자꾸만 헛웃음이 나왔다. 진짠데. 너 형 못 믿냐? 아니 믿을 걸 믿으라고 해야지, 초딩이냐? 외계인이 어딨어. 야. 듣는 외계인 상처받아. 벌떡 일어나서 이야기 하길래 일단 미안하다고 했다. 아니 근데 형이 외계인도 아닌데 내가 왜 사과를 해야 돼. 진짜라니까. 아니 형은 제발 거짓말을 좀 진짜처럼 하지마. 거짓말인지 아닌지 니가 어떻게 아는데.

 절대 진짜 일리가 없는데. 자꾸 정색을 해서. 현진이 삐질거리며 입을 벙긋거렸다. 입은 벌리고 있는데 나오는 말은 없었다. 진짜로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무슨 이런 말을 진짜처럼 하는 건지. 그걸 또 정색까지 하면서 말을 하는 건지. 현진은 민호의 머릿속을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근데 또 생각해보면 외계인 같은 면이 없지는 않은 거다. 가끔 진짜로 외계인처럼 느껴질 정도로 엉뚱하긴 했으니까. 갑자기 남자한테 입술 박치기를 당했는데 거기에 넘어간 것도, 사실은 형이 외계인이라서 그런 걸 아닐까? 휴지를 물었는데도 이 형이 좋아진 것도, 맨날 아저씨같이 구는 데도 귀여워 보이는 것도 사실은 다 외계인이 날 조종하는 건 아닐까? 평소에는 그렇게 엉뚱하다가도 중요한 순간에는 심장이 쿵 떨어질 만큼 멋있는 말을 하는 것도, 별 것도 아니었던 현진의 말에 귀를 빨갛게 익히며 귀엽게 굴던 것도, 그리고 이렇게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좋아하게 된 것도.. 사실은 외계인이라서 그런 거 였을 수도 있지 않을까?

 

 에이. 말도 안 돼.

 

 아무리 현진이 바보라고 해도 그건 진짜 절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저 형은 진짜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내가 헉 진짜? 하는 반응이라도 하길 바란 건가.. 현진이 제 무릎에 다시 누운 민호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무슨. 내가 진짜 바보인줄 아나.

 

 

 

♥♡♥

 

 

 

 근데 자려고 누웠는데 자꾸만 그 말이 생각나는 거다. MH-1025는 또 뭔데? 왜 그렇게 디테일한데, 쓸데없이? 물론 현진도 그렇게까지 바보는 아니었다. MH는 민호일거고, 1025는 생일이겠지. 어떤 생각에서 나온 이야기인지는 머리로 충분히 이해했는데, 자꾸 마음에 걸리는 거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형을 못 믿냐느니, 듣는 외계인 상처받는다느니 하는 소리를 하며 안 그래도 큰 눈으로 제 속을 꿰뚫듯 노려보는 민호가 머릿속에서 자꾸만 둥둥 떠다녔다. 아씨.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제 상상이 한심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현진이 눈을 꾹 감고 잠에 들었다.

 

 그리고 현진의 꿈에는 외계인 이민호가 나왔다.

 

 현진이 아는 외계인은 초록 피부에 까만 눈을 가진 모습이었는데, 현진의 꿈 속 외계인 이민호는 그냥 고양이였다. 그니까 이민호 얼굴이랑 이민호 몸에, 고양이 귀랑 꼬리가 달려있었다. 저보다 작지만 무서운 주먹도 고양이 발 장갑을 낀 것처럼 솜방망이가 되어있었다. 형? 하고 부르자 민호가 손바닥을 쫙 벌려 핑크색 젤리를 보여주며 냥. 했다. 그리고 하늘에서 무슨 핀 조명이 내려오는 거다. 고개를 드니 UFO가 있었다. 스테이크 모양의.

 짱 큰 스테이크 아래로 하얀 빛이 내려와 고양이 이민호를 비췄고, 이내 민호가 냥발을 흔들며 잘 있어라 냥. 하더니 공중에 붕 뜨는 것이었다. 형! 현진이 놀라 민호의 다리를 끌어안았고 민호가 현진에게 붙들린 채 공중에서 멈추었다.

 

 아니 형 진짜 외계인이라고?! 어떻게 외계인이, 아니 그리고 무슨 UFO가 스테이크 모양이고. 아니 근데 지금 어디 가는 건데. 뭐가 잘 있으라는 거야.

 내가 말했잖냥. 인간 황현진.

 아니 형,

 나는 이제 가야 된다냥. 그동안 즐거웠다냥.

 어디 가는데?

 난.. MH-1025로 떠난다냥.

 아니 왜? 갑자기 왜 가??

 인간 황현진이 날 안 믿어줬기 때문이다냥. 진짜 연인 관계를 맺은 줄 알았는데. 냥.

 

 아쉽다는 듯 말하는 고양이.. 아니 외계인 이민호 때문에 현진은 어안이 벙벙했다. 진짜 이게 무슨 소리야..?

 

 아니 형, 우리 당연히 진짜 관계지. 우리 사귀었잖아. 형 나 좋아하잖아.

 근데 인간 황현진이 날 안믿었잖냥.

 말끝마다 냥냥 하는 건 또 무슨 장난이야? 지금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이해가 잘 안 되거든? 형 그래서 지금 나를. 지구를 떠난다는 거야?

 어. 지구에는 이제 안 올 거니까, 잘 살아라 황.

 

 냥냥거리면서 말할 때는 언제고 갑자기 원래의 말투로 돌아온 민호가 현진의 팔을 떼어내고 공중으로 올라갔다. 아니, 이제 안 온다니, 잘 살라니. 내가 형 사랑하는데 이게 진짜 연인 관계가 아니면 뭐야? 내가 형이 외계인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릴 안 믿어서 지금 지구를, 아니 나를 떠난다는 거야? 평생? 어이가 없어서 눈물도 안 나올 것 같았는데 잘 살으라는 소리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흘렀다. 현진이 스테이크 속으로 사라지는 민호를 보며 엉엉 울었다. 그러다 깼다. 깨고 나서도 그 말도 안 되는 외계인인지 미친인지 였던 이민호가 자꾸 생각이 나서 눈물을 벅벅 닦았다.

 

 야, 황, 이제 일어나지?

 

 안 좋은 타이밍에 현진의 방문을 연 민호가 눈물을 뚝뚝 흘리는 현진에 깜짝 놀라 다가와 침대 위에 털썩 앉았다.

 

 왜. 악몽이라도 꿨냐? 

 응.. 존나 악몽..

 

 민호가 입고 있던 잠옷 소매로 현진의 눈가를 벅벅 닦아줬다. 현진이 제발 멀쩡한 잠옷 좀 입자고 떽떽거려서 겨우 산 네이비색 잠옷이었다. 실크도 아닌 옷감에 눈가가 따가웠다. 현진의 눈가가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민호가 답지 않게 현진의 눈치를 살피다 작은 머리통을 끌어와 안고 토닥여주었다.

 

 갑자기 왜 다정하게 해주지. 내가 맨날 허리 끌어안고 빌어야 머리통 툭툭 쳐줬는데. 왜 갑자기 잘해주지. 떠날 사람처럼.. 또 스테이크 모양 UFO를 타던 민호가 떠올랐다. 당연하게도 현진은 민호가 외계인이라서 충격을 받은 게 아니었다. 그런 걸 믿지는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제 스물넷이나 먹은 어엿한 성인 남자였다. 근데 형이 외계인이든 고양이든, 왜 나 버려? 형이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어... 웅얼거리는 현진의 말을 들은 민호가 현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는 말했다. 뭔 꿈인데. 진지하게 묻는 민호에 대고 고양이 외계인 이민호가 자기를 버리고 MH-1025로 떠났다는 말을 절대 할 수가 없었다. 현진이 아무리 귀엽다고 해도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어린이도 안 꿀 꿈을 꿨다는 사실을 애인에게 털어놓기는 꽤나 민망한 일이었다.

 

 말 안 할래..

 그러든가.

 

 민호는 꾸물거리며 제 무릎에 누운 현진의 머리만 어설프게 벅벅 긁어주고 있었다. 현진은 이래서 민호가 좋았다. 굳이 따지고 들지를 않았다. 니가 그러고 싶으면 그러든가. 니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민호는 현진의 말은 정말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주었다. 그래서 좋았다. 현진이 드러내고 싶지 않아하는 자기 연민이 강한 생각들도 굳이 물어보거나 하나하나 따져들며 부정하는 위로는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조금 서운..하기도 했으나 그게 민호 나름의 배려라는 걸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가 있었다. 민호 앞에서는 굳이 뭘 숨길 필요가 없었다. 민호는 현진의 감수성을 있는 그대로 가지고 있을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이었다. 순둥도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처럼만 해도 좋을 텐데. 뭐가 그렇게 어색한지 이상한 표정으로 현진의 머리를 긁어주는 민호의 모습은 고양이 이민호 UFO 도주 사건을 잊게 만들었다. 이럴 때 보면 진짜 좀.. 귀여웠다. 현진이 위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형. 쓰다듬는 거야, 쥐어뜯는 거야?

 쥐어뜯겨볼래?

 잇자나 형.

 엉.

 나는 형이 남자든 외계인이든 사랑해.. 그니까 형.. 나 버리지 마.

 내가 닐 왜 버리냐?

 형...

 

 민호의 말에 감동받은 현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바라보자 민호가 피식 웃으며 현진의 턱을 살살 긁어주며 말했다.

 

 이거 내가 잡아먹으려고 얼마나 열심히 키운 건데. 어떻게 버리냐?

 아 형은 진짜 무드가 없어..

 그래서, 싫냐?

 그건 아니구...

 

 현진이 다시 민호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그래. 민호가 외계인이든 고양이든 현진은 민호를 사랑했고, 민호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런 것 같았다.

 

 형은 내가 외계인이라도 사랑해 줄 거야?

 음.. 이 얼굴 똑같으면.

 형은 내가 그냥 잘생기고 귀여워서 좋아하는 거야? 나 못생겨지면 안 좋아할 거야?

 잘생기고 귀엽다고 한 적 없는데.

 

 맞겠..지? 아니었으면 저를 이렇게 순둥도리 다루듯이 다뤄주었을 리가 없으니까.. 현진이 눈을 감고 다짐했다. 절대 못생겨지는 일 없게 해야지..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