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터를 유지하는 데에는 너무 많은 돈이 든다. 센터 자체가 혐오시설이라 오지에 짓는데도 그렇게 주민들 반대가 심할 수가 없었다. 폭주라도 하면 공들여 만들어 놓은 공원이나 대형 마트가 다 엉망이 되니 이해가 안 되는 처사는 아니었다. 예전에는 쫒겨나다 못해 바다에다가 센터 지은 적도 있었는데 그 때 전세계적으로 어업생산량이 줄어들어서 욕 먹으면서 다시 오지로 쫒겨났다. 한 때는 남극 북극에다가 밀어뒀다가 또 무슨 일 있을 때 대응이 늦어져 그럴거면 센티넬이 있으나 마나한 거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 다시 원래대로 지부 형식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센티넬들은 국제지부 소속이 되었다가 잠깐 지방자치단체에서 소규모로 관리하다가, 이제는 다시 국가로 돌아갔다. 황현진은 지자체 소속으로 있을 때가 가장 자유롭고 심지어는 원하는 사람에 한해선 자취도 잠시나마 가능했고, 걸어서 공원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고 얘기했었다.
황현진은 두 살 때부터 가이드로 발현하여 기억하는 모든 순간을 센터에서 살았다. 여기저기 움직일 때 버릇 때문에 짐 싸는 건 아주 전문가라고 거들먹거리며 이민호가 첫 번째 훈련을 나갈 때 그렇게 아는 척을 해댔던 기억이 선명했다. 그나마 한국은 산에 있어서 얼마나 좋은 건지, 형은 진짜 이렇게 안정된 시기에 들어온 게 차라리 얼마나 행운인지 모른다고, 황현진이 거들먹거렸다. 이민호는 그딴 거 들리지도 않았다.
just in
이민호는 그냥, 센티넬들 파견 와서 호텔에 있다고 원래 다니던 지름길이 출입금지 되어 등교할 때 쓸데없이 돌아가야 하는 거 때문에 센티넬들 빨리 원래 산다는 오지 산골로 꺼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던 생각 없던 고등학생이었다. 근데 씨발 등교하는데 적외선 카메라에 갑자기 이상신호 잡혀서 띠띠 거리더니 그 날 저녁에 군복입고 방호복 입은 사람들 쳐 들어와서 갑자기 이상한 법 조항 중얼중얼 읊더니 센터로 가는 걸 거부하면 죽이겠다고 그랬다.... 이민호는 병으로 죽는 것도 싫었지만 타살이 더 싫었기에 거부할 마음도 없이 일어섰다. 아니요 저 진짜 갈게요. 이거 총 왜 들이대시는 거,,,? 아니 저는. 저는 진짜 뭐 오늘도 걸어왔어요 센티넬로 발현하면 다 날아다니는 거 아니었나? 전 그런 것도 없는데 이거 정확한 거예요? 제 발로 걸어갈게요. 그래 봤지만 뭔 더러운 거 만지듯이 방호복 입고 주사 꼽고 기절해서 센터로 끌고 갔더니 갑자기 위험도가 높다고 그랬다. 기운이 강하다고. 또 완전무장한 사람들 들어와서 얘기하면서 능력 빨리 보여보라고 협박했다. 센터는 진짜 비인간적이고, 제정신인 새끼들이 없다. 이민호는 '위험도'가 높다는 이유만으로도 민간인(이었던)사람 앞에서 총 들고 돌아다니고 아직 아무 잘못도 안했는데 의자에 묶어놓고 능력 발현한 거 언제 알았는지 거짓없이 말하라고 협박하는 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얼떨떨했다. 센티넬 된 거면 고급인력 아닌가. 난 시키는 대로 협력할 생각이었는데 이러면 안하고 싶어지는데? 그런 말 욱해서 한 번 했더니 독방에 갇히기까지 했다.
능력은 그 때 발현했다. 센터의 의외인 면은 열쇠를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전자 도어락은 전기 능력을 가진 센티넬들이 동시에 간섭하기 쉬워서 오히려 보완에 안 좋다고 그랬다. 두꺼운 철체문에 사슬을 감고 무거운 자물쇠를 걸어놓은 걸 보고 이민호는 저도 모르게 열쇠를 부수는 상상을 했다. 능력이 뭔지 말하라는데 정말 모르겠고, 주기적으로 사람들 와서 협조적으로 굴라고 한마디씩 하는 거 때문에 짜증이 극대화된 상태였다. 아니 뭔가 설명을 해줘야지. 아 씨발 저거 진짜 부수고 나가고 싶다. 그 생각을 했더니 머리가 지끈거리고, 자물쇠에 스파크가 튀더니 부서졌다. 총알을 쏜 것처럼 구멍이 생겼고 경고음이 들림과 동시에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이민호는 기절하기 직전에 손가락질을 했다. 저거, 저거 제가 한 거예요?
*
이민호의 능력은 좁은 범위에 힘을 가해 파괴할 수 있는 힘이라고 했다. 그니까 총알 없는 총 같은 거냐고 물었더니 또 그거랑은 매커니즘이 조금 다른 것 같단다. 힘이 모일 수 있는 작은 목표치 안에 균열을 넣어 파괴하는 방식이니 총알처럼 강력한 힘으로 박히는 거랑은 약간 다르다고 그랬다. 이러나 저러나 결과물은 총알로 쏘는 거나 비슷했다. 강력한 살상 무기기도 하고 좁은 목표치만 있으면 아무리 단단한 물체라도 어렵지 않게 파괴할 수 있어 등급이나 위험도가 아주 높게 평가되었다. 늦게 발현되어 어떻게 힘을 다루어야 할지 모르는데 하필이면 한 곳에 '집중'하여 힘을 주는 방식이다 보니 만성적인 두통이 시작되었다. 그 때 처음으로 붙여준 가이드가 황현진이었다. 황현진은 첫인상이 개 더러웠다. 거들먹거리며 다가와 이민호에게 처음 가이딩을 받는데 자기처럼 광범위의, 능숙한 가이딩 받을 수 있는 걸 영광으로 알라며 본인에게 고마워하길 요구했다.
이민호는 이 센터 새끼들의 고압적인 태도와, 이민호를 어떤 폭탄 정도로 여기지만 어쨌든 써먹어야 하니 가이딩 해주겠다는 상황 자체가 고까웠다. 아니 씨발 아무도 나한테 그 무엇도 설명을 안 해줬다고. 황현진은 이민호보다 어린 주제에 처음부터 반말을 깠다. 심지어 형이라고도 안했다. 와 19살에도 발현을 해? 지영누나 야근하던 거 얘 때문이래? 개 깝깝하겠다...
가장 깝깝한거. 집에도 못 가고 여기서 갑자기 감금 당하고 머리 아파 죽겠다고 진통제 달라니까 싸가지 없는 애새끼 방에 밀어 넣어서 빡쳐서 더 이민호 열 받게 하고 있는 게 누군데 지금. 황현진은 이민호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고개 쑥 내렸다. 수치 개안좋다고? 어쩔 수 없지 뭐...
그리고 키스를 당했다. 이민호 인생에서 그건 키스였고, 센터에서는 구강 가이딩 이딴 식으로 불렸다. 그 때 이민호는 묶여있느라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고 기분도 더러웠는데 이상하게 황현진이랑 키스하다 보니 머리가 맑아지는 듯한 느낌에 괴로웠다. 이게 가이딩 인가. 센티넬이 있으면 가이딩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정도는 알았는데 그게 이딴 식으로 이루어지는 건 몰랐다. 접촉이라고 하긴 했는데 진짜 이딴 식의 접촉이라고는 진짜 상상도 못했다고... 이민호는 약국에서 파는 가이딩 피로회복제의 몇 천 배쯤 되는 효과로 빠르게 심장박동을 느리게 하는 감각을 느꼈다. 종종 약간의 가이딩 효과가 있다는 피로 회복제를 먹으면 안정적으로 기분이 가라앉는 걸 느꼈었는데 그게 센티넬이었기 때문이구나, 하는 때아닌 깨달음도 느꼈다. 황현진이 떨어지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이민호를 바라봤다.
"이제 됐지?"
"민호씨 어때요? 괜찮아요? 이제 수치도 안정되고 했으니까... 늦었지만 센터 설명회도 가질 거고, 이쪽은 현진이인데 둘이 파장이 잘 맞더라구요. 가이딩 처음 받아본 거죠. 훨 낫죠."
"이거 꼭 이딴 식으로 가이딩 해야 해요?"
"점막이 직접 닿는 게 가장 효과가 빨라서요. 지금은 익숙하지 않겠지만..."
"기분이 너무 더러워요..."
*
황현진은 센터 내에서 정말 오냐오냐 길러졌다. 황현진보다 높은 범용성과 질 좋은 가이딩 제공할 수 있는 사람 전 세계로 한정해도 스무명이 안 됐다. 이민호에게도 사실 황현진의 호의로 가이딩을 베풀어 준 것에 가까웠다. 손 정도 잡아 줄라다가 부들부들 떠는 거 안타까워서 도와준 건데 반응 그딴 식인 게 황현진 인생에서는 처음이었다. 별로 없는 또래이니만큼 잘 지내볼 생각이었는데 이민호는 황현진이 무슨 말을 할 때마다 틱틱거렸다. 야, 라니... 형이라고 불러야지. 센터에서는 도덕,예절 교육 이런 건 없냐? 어떻게 애들이 하나같이 싸가지가 없어.
황현진 인생에 그딴 취급 처음이었다. 황현진은 대체 가능한 센티넬 새끼들보다 고급인력이었다. 평균 수명 40도 안 되는 애들 거대한 범용성으로 수명도 늘려주고 능력 쓰고 폭주 하기 직전인 거 눌러놓는 것도 다 황현진의 아량 덕분이었다. 이민호는 키스를 굳이 구강 가이딩이라는 이름마저 붙여가며 애들 세뇌 시키는 게 그 무엇보다 끔찍하다는 얘기를 자꾸 해댔다. 황현진으로써는 그걸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형 알았는데.
"근데 적응 해야지 어떡해. 형이 좆같아 가이딩 존나 싫어 이런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잖아 뇌 터져 죽는다니까?"
"아니 받는 건 받는 건데. 나는 그래 위험해서 그런다고 쳐. 니는 뭐한다고 센터에 묶어놓냐?"
"내가 나가서 센티넬들 약점이라도 떠벌리고 다니면 어떡해."
"그런다고 너도 평생 센터에서 외출 허락 받아가며 사는 게 맞아?"
"내가 괜찮다는 데 왜 니가 그러냐고."
"너 말고 민호 형."
"왜 형이 그러냐고."
"그리고 어린 애한테 키스보다 구강 가이딩 이런 거 먼저 가르쳐 놓는 것도 끔찍해..."
"형이 쓸데없이 낭만적으로 가이딩을 이해하고 있는 거야."
형이 그렇게 안 산 건 알겠는데. 형도 이 세계 들어왔으니까 이거 이해해. 황현진이 명령하듯 말했다. 이민호는 이제 저도 센티넬이고 센터에 평생 살아야 하면서도 자꾸 본인과 센터 사람들을 분리해서 말했다. 아 더럽고 예의 없는 센터새끼들. 그럼 어릴 때부터 센터에서 살아온 황현진은 기분이 이상했던 거다. 형. 그렇게 싫으면 도망가. 30분안에 총살 당하겠지만.
대충 마음에도 없는 소리 지껄였다. 이민호는 에휴, 한숨을 쉬고 훈련에 나갔다. 어찌되었든 이민호는 원하지 않았어도 힘을 가지게 된 만큼 사회를 위해서 힘을 쓰고 싶다고 했고 센터의 비합리적인 것들에 대해서 센티넬들이 어릴 때 발현한다고 애들을 세뇌시키는 꼬라지가 더럽다고 맨날 불평불만 했었어도 나름 최선을 다해서 능력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 날 이민호의 훈련이 끝나고 황현진은 굳이 찾아가지 않았다. 황현진이 이민호를 만나기 껄끄럽다 하자 그 누구도 황현진에게 이민호의 가이딩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래, 괜히 가서 위험해지면 안되지. 이민호 그렇게 비협조적이야? 어디 좀 구속시켜야 하나, 그 말을 듣고는 황현진도 좀 기분이 이상했다. 아니, 그런 거 아니고 그냥 약간...말싸움 한 거예요. 구속이나 독방 이런 일은 아니고 그냥 뭔 얘기하다가요.
이민호는 가이딩 약물을 한 번 맞고 바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사실 그건 센터 내에선 벌에 가까웠다. 약물 가이딩은 수치 자체는 내려가지만 센티넬들이 느끼는 고통에 대한 경감 효과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이민호는 센터의 법칙을 모르니 그게 벌인지도 모르고 받았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이민호가 가이딩 약물만 투입 받은 건 다 황현진이 이민호에 대해 말을 흘렸기 때문에...
이민호가 이상하다 이상하다 했더니 아마 황현진도 옮은 게 분명했다. 황현진은 자기한테 무례하게 굴어서 벌 받는 센티넬들에 대해 어떠한 처우도 과하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나 없으면 죽을거면서 왜 나한테 함부로 굴어서 저런 벌을 받냐는 게 사실 주된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민호는... 생각해보니 센터에 들어온 지 몇 달도 채 안됐고 황현진은 겪어본 적 없지만 센터 밖의 삶이랑은 많이 다르다곤 하니까... 황현진은 불쌍하게 두통에 시달릴 이민호에게 조금 미안해졌다. 그래, 그냥 내가 봐주자. 내가 가서 도와 줘야지.
황현진이 일어나 나오자 연구원들이 분주했다. 아무나 붙들고 이민호 어디 있냐고 물어보자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민호는...약물로 수치가 안 가라앉아서. 지금, 잠깐 격리했어.
"왜요? 그럼 가이딩 하면 되잖아요 다른 사람한테라도..."
"센터에서 그러지 말라 하대,"
"아니 저한테 민호형이 뭘 실수한 거 아니고 그냥... 제가 가이딩 할게요 그럼."
"지금 수치 안 좋아서 출입금지 떨어졌어."
"그럼요?"
내일 아침에 파동 가라앉으면 그 때 풀릴 걸? 민호는 격리되면 수치가 많이 안 좋아지더라고... 스트레스가 심한 가봐. 나도 현진이한테 연락 하는 게 맞지 않냐고 했는데 아무래도 이레귤러다보니까 본부에서 좀. 그렇다 하더라고.
늦게 발현한 만큼 충격요법이 필요하다는 거지. 아무리 그래도 참, 센터가... 너무하지. 연구원이 답지 않게 감정적으로 말을 뱉었다. 이민호는 사실 능력으로 방을 나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석에 얌전히 틀어박혀있었다.
출입금지가 풀리자마자 들어가서 손부터 잡았다. 사실 이민호가 먼저 달려들어 키스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민호는 황현진이 이쪽으로 걸어 들어오는 동안 손끝 하나 먼저 대지 않다가 손을 잡자 고개를 푹 숙여 어깨에 머리를 댔다. 황현진은 이상한 죄책감에 허겁지겁 사과했다. 형, 미안해 내가 형이랑 싸웠다고 한 건 아닌데... 어쨌든 내가 가이딩 하기 싫다고 해서. 나는 형한테 이렇게 할 줄은 모르고...바로 오려고 했는데 출입금지 나서 못 온 거야.
이민호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머리 아프다. 그렇게 중얼거려서 황현진은 급하니 일단 입술 가져다 댈까 하다가 이민호에게 허락을 받았다. 형, 입으로 가이딩 해줄까? 이민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한테는 그렇게 해 줄 필요 없어. 그리고...
"내가 생각해보니까, 너 말이 맞아. 내가 센터에 적응하는 게 맞는 건데, 내 상식만 상식이 아닌데 괜히 짜증냈던 것 같다."
"원래 이러진 않는데 형이 늦게 발현해가지구... 형 탓이라는 게 아니고, 그래서 센터에서 좀 더..."
"아니야. 그게 맞지 뭐..."
좀 빡치긴 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 안 가는 것도 있고. 근데 그래도 너한테 승질 낼 건 아닌데. 또 들어보니까 너 나한테 붙어서 전담처럼 가이딩 해준 거 나 신경 써준 거라며. 난 몰랐어. 그건 미안타. 근데 너도 나한테 싸가지 없게 굴었으니까. 쌤쌤.
그래도 생각해봤는데. 니 말고 여기 누가 있나 싶어. 잘 지내자 이제... 아 피곤해 진짜... 이민호는 격리 해제 판정을 받을 때 까지 조금 더 기다려야 했다. 황현진은 굳이 가이딩도 끝난 센티넬 앞에서 같이 격리가 풀리길 기다렸다. 이민호가 방에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걸 보면서, 황현진은 급하게 이민호를 붙들었다. 진짜 가이딩 더 안 해줘도 돼? 어. 너도 입으로 그,,,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한다며. 그때도 내 상태 보고 해준 거라며. 알았음 나도 니 앞에서 그렇게 말 안했을거야.
응 진짜 별로 안 좋아하는데. 황현진 역시 모르는 사람이랑 혀 섞는 거 별로라고 생각해왔었다. 이민호처럼 가이딩이란 이름으로 키스 시키는 더러운 새끼들, 이런 반응은 아니었으나 아무래도 조금 껄끄러웠다. 근데 이민호한테는 처음에 피떡 된 얼굴에다가도 해주는 게 별로 안 싫었고 격리실에서도 거절당한 게 조금 속상하기도 했다. 게다가 가이딩 한 번 받았으니 황현진이랑 붙어있으면 당장 고통 경감될 거라는 걸 알았을 거면서도 먼저 달려들지 않았다는 점도 사실 꽤 감동이었다. 그게 바깥에서는 예의라고 하더라도, 센티넬들에게는 당장의 고통과 관련된 문제이니까 그렇게 행동하기 사실 절대 쉽지 않았을 텐데. 황현진은 머리 긁적거리며 나왔다. 문득 이민호가 이 오지 센터에 틀어박히게 된 게 불쌍하단 생각이 들었다.
*
이민호에게 센터의 생리를 잘 알고 순종적인 황현진이 자의로 붙었다는 건 아주 잘 된 일이었다. 황현진은 이민호를 통해서 바깥의 사람들은 황현진만큼 오냐오냐 크지 않는 다는 것도 배우고 제 멋대로 안 된다고 짜증내거나 기분 나쁜 걸 숨기지 않는다거나 하는 것들이 좋아 보이지 않는 다는 것도 배웠다. 별로 남을 기분 나쁘게 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나 때문에 기분 나쁘다니까 안 그러려고. 황현진이 어렵게 말 했을 때 이민호는 손을 들어 머리도 쓰다듬어주었다. 아니 뭐, 그렇게까지 할 일은 사실 아닌데...
이민호는 불안해했고 황현진에겐 혼란스러웠던 십대를 지나 이민호는 제법 빠르게 적응했다. 처음엔 조용하고 다른 사람들과 말 하는 것도 어색해하더니 이제는 다른 센티넬들하고도 친해져서 선물도 주고 받았다. 이민호의 능력 발현은 물리적인 파괴로 이어지지만, 작동 시키기 위해서는 사물에 집중 하는 게 필요했다. 이민호는 시간이 지날 수록 두시간 이상 되는 영화나 드라마 몰아보는 걸 기피하게 되었다. 이민호는 한 화에 30분 이내인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가벼운 웹소설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몰입하면 바로 두통이 오는 것 같아 황현진이 손을 잡고 보는 건 어떠냐는 대안도 제시했는데 바로 거절당했다. 너도 쉬어야지 고작 나 영화 보는데 가이딩 해준다고? 다른데 가서는 해준다고 하지 마.
형이니까 해준다고 한 건데... 황현진은 이민호라서 해주고 싶은 게 많았다. 같이 영화도 보고 싶었고, 머리 아픈데 내가 해 줄 수 있는 거니까 가이딩도 수시로 해주고 싶었고... 이민호는 황현진이 피곤 할 까봐, 혹은 그렇게 자주 해주면 자기가 그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할 것 같다는 이유를 대며 거절했다. 황현진은 이민호가 필요에 의해서 자기를 계속 찾는 게 좋았는데 그러면서도 자기에게 너무 의지하지 않는 이민호에게 서운함을 느꼈다. 혼자서도 잘 살아가는 이민호가 자랑스럽고 멋지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황현진이 원하는 만큼 황현진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다는 게 이상하게 기분이 나빴다. 그러면서도 이민호의 불안과 불행을 바라는 것 같아 스스로가 한심하기도 했다. 황현진은 이민호가 등장하고 인생에 복잡하고 불합리한 게 많아졌다고 생각했으나 그게 나쁜 변화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이민호가 훈련을 넘어 센터 밖을 처음으로 나가는 날에는, 이민호는 도망갈 위험이 너무 높아서 감시인력이 평소의 세배는 들러붙었다. 이민호는 그 감시인력을 줄줄이 끌고 나가서 제발 집중 좀 하게 조용히 좀 해달라고 소리질러가며 임무를 완수했다. 늦게 발현해서 사회를 이미 겪었는데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도 억울한데, 센터에서도 아직까지 외부인 취급하니 이민호는 그게 꽤 스트레스를 받았던 모양이었다. 잔뜩 예민해진 상태로 돌아온 이민호는 답지 않게 황현진을 꾹 끌어안고 있곤 했다.
"형 그래도 다음임무부터는 덜 붙인대. 내가 엄청 얘기했어. 잘했지."
"그래 너밖에 없다."
"많이 힘들어?"
"어 죽겠다 진짜... 임무가 문제가 아니고, 사람이 많으니까 시끄럽고 집중이 안 돼."
그치만. 절대 안 죽지 나는. 이민호가 목소리에 힘 주어 얘기했다 다시 힘을 풀었다. 황현진은 가이딩과는 관련 없이 힘을 주어 이민호를 끌어안아 주었다. 이민호는 계속 떠들었다. 다음 번엔 진짜 좀 낫겠지. 아 진짜 자연사 하기 힘들다. 그래도 해야지 어떡해. 황현진 너도 오래 살아..
*
이민호가 간절하게, 제발 조용한 곳에서 빠르게 처리하고 나오고 싶다고 그렇게 바랐으나 결국 이민호에겐 최악의 장소에서 일이 벌어졌다. 시민들이 비명을 지르는 상태에서 센티넬들 투입한다고 헬리콥터도 날라다녔다. 이민호는 양정인이 선물해준 헤드셋 노이즈 캔슬링키고 스팟으로 걸어갔다. 황현진은 구조 작업을 도우며 이민호가 잘 가는지 확인했다. 이 긴급한 상황에 노래를 쳐 듣고 있다고 누가 욕을 뱉길래 째려보기도 했다. 하, 시끄러우면 불안정해져서 그런거니까 좀. 조용히 좀 해주세요.
이민호는 후드를 올려 쓰고 표정 없이 가서 약속대로 빠르게 처리하고 바로 몸을 돌렸다. 구조나 진압 자체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 능력이다 보니 활로를 만들어줌과 동시에 바로 빠져줘야 했다. 현장이 지나치게 시끄러웠다. 황현진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급하게 센티넬들의 상태를 확인하다 근처까지 온 이민호의 팔을 붙잡아 끌어당겼다. 괜찮냐고 물어봤지만 얼굴이 허옇게 질려있었다.
황현진이 몇 마디를 더 건네기 위해 돌아봤지만 임무를 끝낸 현재 불안정한 상태의 이민호는 바로 헬리콥터에 실렸다. 황현진 이따 보자,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아주 죽을 상은 아니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민호형은?"
"갔어. 정인이 너는 어때. 괜찮아?"
"나는 괜찮은데. 민호형이랑 상성이 안 맞는다 여기."
시끄럽고, 먼지도 너무 많고... 민호형 센터 가면 격리될 것 같아. 아까 자기 말로 진짜 안 좋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아까 팀장이 형 찾더라. 정리 되면 먼저 보내줄 듯?
이민호 격리되겠지? 황현진이 입술을 씹으며 묻자 양정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센터에 지금 가이드 한 명도 없어서 아마 그렇겠지. 먼저 빠진 사람들 중에 상성 안 좋은 사람들 다 격리랬어. 형도 조심해. 양정인이 장갑을 바꿔 끼고 바로 현장으로 뛰어 올라갔다.
*
"난 도시가 그립다고 생각했거든? 아닌 것 같아. 난 센터에서 나가라고 해도 여기 산에서 자연인처럼 살래. 낚시해서 물고기 잡아먹으면서."
"농담이 나와?"
"나 센터 오지 산골에 처박혀서 신제품 2주 있다가 들어오는 편의점 있고 이거 진짜 너무 싫었는데. 막상 내려서 고요한 센터 오니까 진짜 마음이 너무 편안한 거 있지.. 괜히 지부를 숲 안에 지은 게 아닌 것 같더라."
격리실 안에 있는 이민호는 불안정한 그래프가 삐삐 거리는 사이에 있으면서도 황현진한테 끊임없이 말을 건넸다. 긴급 가이딩 요청 넣고 받아들여 질 때 까지 기다리면서 황현진이 초조해하자 이민호는 자꾸 조용해서 마음이 편해진다며 가이딩 안 받아도 될 것 같다고 장난쳤는데 황현진은 별로 웃어줄 기분 아니었다.
"임무 나가면 신상 사온다며."
"까먹었네."
"못 한 거겠지."
"까먹은 건데?"
이민호가 또 아무도 안 믿는 허세를 떨었다. 황현진은 패드로 몇 번이나 긴급 격리 해제 요청 넣은 걸 확인하다가 이내 머리를 감싸 안고 패드를 조작했다. 아... 이거 걸리면 끝장인데, 나 팀장 비밀번호 알거든. 내가 대리로 승인 해야지 안되겠다...
"센터 왜 이렇게 쓸데없이 비효율적인 게 많아? 긴급하다는 데 뭔 요청 승인을 받으래 미쳤나."
"야 다 필요하니까 만들어졌겠지. 네가 그랬잖아 센터의 이상한 규칙은 다 사고가 있어서 추가된 거라고."
"몰라. 형한테 이거 부수라고 하고 싶은데 그랬다가 형한테 징계 줄 까봐."
야 차라리 내가 징계 받을게, 이민호가 집중하려 하자 수치가 또 불안하게 요동쳤다. 황현진이 비명을 지르고 승인 버튼을 연타했다. 아 됐어. 나 징계 못 줘. 센티넬 죽일 생각이면 주겠지.
황현진이 급하게 카드를 대고 들어가 자물쇠를 풀었다. 이민호는 아까 전까지만 해도 유리문 앞에 바싹 붙어있더니 황현진이 가까이 오자마자 소파 구석자리에 가서 하는 꼴을 보고 있었다. 황현진이 가까이 다가오자 손을 내밀더니, 가까이 붙어 깍지 껴 잡았다. 전보단 확실히 안정되어 가는 게 느껴졌지만 여전히 초조한 수치였다. 황현진이 입술을 붙이려 하자 이민호가 크게 고개를 저었다. 아, 쫌.
"아니 이 상황에서도 하기가 싫어?"
"......"
"고집 부리지 말고 좀."
"손으로 되고 있잖아."
"아니 형이 아프잖아 지금."
"참을 만 해."
이민호가 거절하자 황현진은 깍지 낀 손은 풀지 않으며 소리를 질렀다. 아니 형 밖에서는 키스가 뭐 대단한 의미인 지 몰라도 여기선 그 정도 아니거든? 형 이제 사회 나가서도 못 살아 저따위로 시끄러운데 어떻게 살아. 센터 와서 안정되고 좋았다며. 근데 왜 이걸 못 버리냐?
이민호는 가만히 듣다가 진정하라며 가슴팍을 도닥거렸다. 황현진이 열 받아 하든 말든 장난치려는 태도가 어이없어 황현진이 씩씩거리다 눈가를 슥 닦았다. 나 진짜 너무 무섭고 불안해. 나한테 기대주면 안 되는 거야? ... 그래, 키스라고 해도. 그렇게 나랑 하기가 싫어? 난 키스라고 생각해도. 아니 사실은 그거라고 생각하면 더... 형이랑 하고 싶은데.
화가 나는데도 깍지 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민호가 황현진을 툭툭 건드렸다. 야 현진아... 난 구강 가이딩은 진짜 좀 싫고 짜증나는데 키스는 좀 하고 싶다...
"너 가이딩 하지 말고. 그냥 키스만 하자."
"장난해? 지금 이 상태에서...형 낭만도 따질 때 따지는 거야."
"아니 그러니까... 하게 된다면 이렇게 처음 하기 싫었단 말야. 당장 죽는 것도 아니잖아 일단. 가이딩 들어오면 깍지 푼다 이제."
하 그게 나한테 협박 같아? 형만 아프지 그게 나한테 왜 협박인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황현진은 마음을 가다듬었다. 기운을 손에 집중하고 넘겨준다는 인식 없이 입술만 가져다 댔다. 키스를 하면서 오히려 가이딩을 안 하는 게 처음이라 그게 더 어려웠다. 배속이 간질거리고 혀를 훑는 기운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수치가 불안정하다는 불이 여전히 켜져 있는 상태에서 비효율적이게, 키스까지 하면서 가이딩은 피부로만 하고 있고. 황현진은 이 모든 것들이 센터에서 절대 용납하지 못하는 쓸데없는 비효율일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입술을 파고들었다. 숨을 쉬기 위해 잠시 떨어지자 이민호가 새빨개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황현진은 이런 식의 행위가 부끄럽거나 민망한 게 아니라는 교육을 20년간 들어왔음에도 이상하게 새빨개졌다. 잠시간 대치하자 이민호가 다시 입술을 붙여왔다. 이제 첫 키스 로맨틱하게 했으니까 실리적으로 가자. 야 나 머리 아파 죽겠다 진짜.